‘62%‘는 누구의 숫자인가
“베라 루빈 원가의 62%가 메모리”라는 문장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이 숫자가 누구의 관점에서 잰 것인가다.
이 62%는 완제품(여기선 GPU 시스템)을 만드는 쪽의 지출 구성이다. 즉 시스템 한 대를 조립하는 데 들어가는 총 부품·제조 원가를 100으로 놓았을 때, 그중 62가 각종 메모리로 나간다는 뜻이다. 이 값을 부르는 이름이 부품 원가 비중(Bill-of-Materials cost share, BoM share) 이다.
여기서 흔히 미끄러지는 지점이 있다. “62%가 메모리”를 “메모리 회사가 그 돈을 번다”로 읽는 것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축이다. 62% 안에는 메모리사의 이익만이 아니라 웨이퍼 원재료, 장비 감가상각, 패키징 비용, 물류가 전부 섞여 있다. 비중은 지출의 크기를 재지, 부가가치의 귀속을 재지 않는다.
비중을 만드는 건 단가가 아니라 ‘단가 × 수량’
기사가 “HBM4보다 소캠2 비중이 크다”고 말할 때, 직관은 “그럼 소캠2가 더 비싼 부품인가?”로 향한다. 꼭 그렇지 않다.
BoM 비중은 단위 단가가 아니라 완제품 한 대에 들어가는 총 금액으로 정해진다. 즉 (단가 × 탑재 수량)의 합이다. 단가가 낮아도 탑재량이 많으면 총 지출은 커지고, 단가가 높아도 몇 개 안 들어가면 총 지출은 작아진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비중이라는 지표가 ‘스펙 시트의 화려함’과 무관하게 돈의 흐름을 잡아낸다는 점 때문이다. 가장 첨단 부품이 반드시 원가에서 가장 큰 덩어리인 것은 아니다.
낮은 출발점은 비중을 부풀려 보이게 한다
비중 이야기에서 자주 착시가 생기는 대목은 ‘증가율’이다. 어떤 부품의 원가 비중이 작년 대비 두 배가 되었다고 하면 크게 들리지만, 출발점이 낮았다면 절대 금액의 이동은 생각보다 작을 수 있다. 반대로 이미 60% 넘게 차지하는 항목은 몇 %p만 더 올라도 완제품 원가 구조를 근본부터 흔든다.
출발점(기저)이 낮으면 증가율은 쉽게 커진다 — 이 관계를 직접 움직여 보라. 아래에서 ‘기저’를 낮추면 같은 절대 변화가 얼마나 큰 %로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핵심은, 비중의 레벨(지금 얼마인가)과 속도(얼마나 빨리 커지는가)는 다른 축이라는 것이다. 62%라는 레벨은 “이 항목이 원가 관리의 급소”임을 말하고, 증가율은 “구조가 어느 방향으로 재편되는 중인가”를 암시한다. 둘을 섞어 읽으면 결론이 엉킨다.
비중이 크다 = 협상 테이블에서 무겁다, 그러나 이긴다는 뜻은 아니다
완제품 원가에서 한 부품이 62%를 차지하면, 완제품사 입장에서 그 부품은 원가의 급소다. 그 부품 단가가 10% 흔들리면 완제품 총원가는 6%p 넘게 움직인다. 자연히 완제품사는 이 항목의 공급·가격을 가장 예민하게 관리한다.
부품사 입장에서 보면 이는 협상 테이블에서의 무게로 번역된다. 다만 무게가 곧 승리는 아니다. 실제 힘의 향방은 세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 대체 가능성 — 그 부품을 댈 수 있는 공급사가 여럿인가, 사실상 하나인가.
- 성능 기여도 — 그 부품이 완제품 성능을 좌우하는가, 아니면 표준화된 소모품인가.
- 전환 비용 — 공급사를 바꾸는 데 설계·검증이 다시 필요한가.
같은 62%라도, 대체 불가하고 성능을 좌우하는 부품일 때와 여러 공급사가 경쟁하는 표준 부품일 때 의미는 정반대다. 그래서 비중은 방향을 정해주는 지표가 아니라, ‘어디를 들여다봐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나침반에 가깝다. 이 각도는 파운드리 vs 메모리 공급 레버리지 개념과 이어진다.
비중을 밸류에이션으로 잘못 옮길 때
투자 맥락에서 이 지표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원가 비중이 크니 그 부품사 이익도 크겠지”로 곧장 뛸 때다. 앞서 봤듯 비중은 지출의 크기이지 이익의 귀속이 아니다. 원가에서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부품이 오히려 경쟁 심화로 마진이 얇을 수도 있고, 작은 덩어리 부품이 독점적 지위로 마진이 두꺼울 수도 있다. 이익률과 부가가치는 DRAM·HBM 마진 수렴 같은 별도의 렌즈로 봐야 한다.
정리하면, 부품 원가 비중은 다음을 재는 도구다.
- 완제품사의 지출이 어디에 집중되는가(급소)
- 부품별로 원가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는가(방향)
그리고 다음은 재지 못한다.
- 부품사가 실제로 얼마를 남기는가(이익)
- 협상에서 누가 이기는가(대체 가능성·성능이 정한다)
- 완제품이나 부품 주가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가의 62%‘처럼 자주 인용되는 수치가 무엇을 재고 무엇을 못 재는지를 구분하기 위한 개념 정리 교육 자료다. 같은 숫자도 어느 축에서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갈린다는 점만 남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