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칩값이 50% 뛰었다, HBM 부족이 물었다”는 헤드라인은 매년 형태를 바꿔 돌아온다. 그런데 여기서 반복되는 진짜 개념은 ‘가격이 올랐다’가 아니다. 같은 물건이 이쪽 시장에서만 세계 시세 위로 벌어져 굳는 구조 — 즉 ‘가격 쐐기(price wedge)‘다. 이 글은 그 쐐기가 왜 생기고, 왜 자연스럽게 좁혀지지 않는지를 판다.
가격 격차의 정체는 ‘수요’가 아니라 ‘막힌 통로’다
직관은 “부족하니까 비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절반이다. 세상 어딘가에 같은 칩이 더 싸게 있다면,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그걸 사다 파는 재정거래(arbitrage)가 격차를 순식간에 좁힌다. 사과가 옆 동네에서 싸면 사다 팔아 격차를 메우는 것과 같다.
가격 쐐기가 생기려면 이 재정거래가 불가능해야 한다. 수출통제는 바로 이 통로를 법으로 잘라 버린다. 세계 시세가 아무리 싸도 그쪽에서 사 올 수 없으면, 국지 가격은 세계 시세에 묶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뜬다. 그래서 가격 격차는 부족의 크기라기보다 통로의 좁음을 재는 값이다.
이것은 ADR 프리미엄(국경 간 같은 주식의 가격 차)이 ‘재정거래 마찰’로 설명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골격이다. 대상이 주식에서 반도체로 바뀌었을 뿐, “통로가 막히면 같은 물건도 두 값을 갖는다”는 원리는 동일하다.
HBM 부족이 쐐기를 키우는 방식: 탈출구를 하나씩 닫는다
가격 쐐기를 좁히는 힘은 재정거래만이 아니다. 대체(substitution)도 격차를 눌러 준다. 통제받는 고급 칩을 못 구하면, 사람들은 성능이 낮은 칩이나 다른 가속기로 갈아탄다. 대체가 쉬울수록 고급 칩 가격이 무한정 뛰지 못한다 — 어느 선을 넘으면 다들 저급 칩으로 도망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HBM 부족이 결정적으로 개입한다. 저급 칩·대체 가속기도 메모리(HBM 또는 그 대체 메모리)를 먹는다. 그런데 그 메모리마저 부족하면, 대체 경로 자체가 막힌다. 탈출구가 하나 닫히는 셈이다.
정리하면 국지 가격을 좁힐 수 있는 통로는 둘이다 — ① 국경 넘어 사 오기(재정거래), ② 옆 제품으로 갈아타기(대체). 수출통제가 ①을 닫고 HBM 부족이 ②를 닫으면, 남은 탈출구가 없다. 두 마찰이 겹칠 때 쐐기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
쐐기의 크기 = 부족 × 통로의 좁음
같은 부족이라도 쐐기 크기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격차의 크기는 대략 이렇게 분해된다.
- 부족의 절대 크기: 수요 대비 공급이 얼마나 모자란가.
- 통로의 좁음: 재정거래·대체가 얼마나 막혔는가 (0이면 완전 개방, 1이면 완전 봉쇄).
통로가 완전히 열려 있으면(0에 가까우면), 큰 부족도 세계 시세로 흡수돼 국지 격차가 작게 나온다. 반대로 통로가 거의 닫혀 있으면, 작은 부족도 큰 가격 격차로 증폭된다. 그래서 “50% 올랐다”는 숫자 하나만 보고 “그만큼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읽으면 오독이다. 그 50%에는 통로가 얼마나 막혔는가가 곱해져 들어가 있다.
이 관점은 ‘가격이 부족의 신호’라는 통념(price-hike-as-supply-scarcity-signal)에 조건을 단다 — 통로가 열려 있을 때만 가격이 부족의 크기를 비교적 정직하게 반영한다. 통로가 막히면 가격은 부족보다 정책·차단 강도를 더 크게 말한다.
왜 좁혀지지 않고 ‘굳는가’: 쐐기의 반영구성
일반적인 공급 부족은 가격 상승이 공급 증설을 부르며 자기 조정된다. 하지만 가격 쐐기는 두 가지 이유로 잘 좁혀지지 않는다.
첫째, 통제는 정책 변수다. 시장 가격이 아무리 뛰어도 통제 자체를 시장이 풀 수 없다. 둘째, 국지 시장의 대체 공급(국산 칩·국산 메모리)은 성숙에 시간이 걸린다. 설비·수율·검증(qualification)에 리드타임이 있어, 가격 신호가 즉시 공급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 쐐기는 ‘지금 얼마나 비싼가’의 스냅샷이 아니라 정책의 차단 강도와 국산 대체의 성숙도를 재는 온도계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한다면 그건 통로가 다시 열리고 있다(통제 완화 또는 국산 대체 성숙)는 신호에 가깝다. 격차 자체가 특정 기업의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특정 종목·ETF·반도체를 사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를 점치는 글도 아니다. ‘가격 쐐기’라는 반복되는 구조 — 통로가 막히면 같은 물건도 두 값을 갖고, 그 격차의 크기가 무엇을 재는지를 개념으로 설명하는 교육 자료다. 실제 수치·정책은 시점마다 다르므로, 구체적인 값은 항상 원 출처의 최신 데이터로 확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