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절반까지 온다.” 추격자를 다루는 기사에서 가장 자주 보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짧은 문장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자(尺)가 뒤섞여 있다. 무엇의 절반인지를 분리하지 않으면, 같은 숫자를 놓고 정반대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절반’은 세 개의 다른 자다
메모리 추격자의 위치를 재는 자는 최소한 세 종류다.
- 물량(비트) 점유율: 시장에 나온 전체 DRAM 비트 중 몇 %를 그 회사가 찍어냈나. 저부가 구세대 제품을 대량으로 밀어내면 이 숫자는 빠르게 오를 수 있다.
- 매출·부가가치 점유율: 같은 비트라도 제품 믹스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HBM·최신 노드 서버용 제품과 저가 범용 제품의 비트당 매출은 몇 배 차이가 난다. 물량 절반이 매출 절반을 뜻하지 않는 이유다.
- 기술 세대 격차: 최신 노드까지 몇 세대 뒤에 있나. 이건 점유율과 아예 다른 축이다. 물량을 아무리 늘려도 세대 격차 자체는 줄지 않을 수 있다.
“삼성의 절반”이라는 한 문장은 이 셋 중 하나(보통 특정 세대의 물량)를 말하는데,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종종 ‘기술·매출까지 절반’으로 번역된다. 이 번역 오류가 대부분의 오해를 만든다. 관련해 세대 격차 자체를 재는 법은 메모리 기술 노드 격차에서, 제품 믹스가 매출 점유율을 어떻게 비트는지는 HBM 점유율 vs 기술 전환에서 더 판다.
추격자는 왜 성장률이 커 보이나 — 기저의 함정
추격자 기사에는 늘 큰 성장률(%)이 따라붙는다. 이건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수의 성질이다. 출발점(기저)이 작으면 같은 절대 증가량도 훨씬 큰 %로 찍힌다. 10에서 15로 가면 +50%, 100에서 105로 가면 +5%다. 절대 증가는 똑같이 5인데도.
그래서 “성장률이 선두보다 높다”는 문장과 “선두를 따라잡고 있다”는 문장은 다른 축의 말이다. 성장 속도는 방향과 기울기, 절대 위치는 지금 서 있는 지점 — 둘을 한 문장에 섞으면 착시가 생긴다. 아래에서 출발점을 낮게 놓고 배수를 키워 보면, 성장률이 어떻게 부풀려지는지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 직접 움직여 보라.
핵심은 이것이다. 낮은 기저에서 나온 큰 %는 ‘빠르다’는 사실은 맞지만, ‘가깝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두 축을 갈라서 읽어야 한다.
미래 점유율 추정치 = 가정의 함수
“2027년에 어디까지”라는 추정치는 관측된 사실이 아니라 가정 위에 세운 계산이다. 보통 이런 입력들이 들어간다.
- 캐파 증설 속도: 팹 몇 개를 언제 가동하나. 장비 반입·전력·부지 제약이 여기 걸린다.
- 수율: 같은 캐파라도 양품 비율이 낮으면 실제 출하 비트는 준다. 신세대일수록 수율 곡선이 관건이다.
- 수요·가격: 시장 전체 파이가 커지는지, 가격이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매출 점유율은 물량 점유율과 또 갈린다.
- 경쟁사 대응: 선두가 감산·증설·세대 전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 점유율은 내가 뭘 안 해도 바뀐다.
즉 하나의 추정치는 이 가정들의 곱이다. 그래서 개념적으로 안전한 독법은 “2027년에 X%“라는 결론이 아니라, 그 X를 만든 가정 중 무엇이 가장 흔들리기 쉬운가를 보는 것이다. 캐파와 장비 반입이 곧바로 출하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신규 진입과 장비 캐파 디커플링에서 따로 다룬다.
세 축을 겹쳐 읽는 체크리스트
같은 뉴스를 볼 때, 세 질문으로 나눠 재면 착시가 걷힌다.
- 어느 자인가 — 이 ‘절반’은 물량인가, 매출인가, 세대인가? 셋 중 무엇인지 먼저 확정한다.
- 어느 세대·어느 제품인가 — 전체가 아니라 특정 세대·특정 응용의 절반일 가능성이 크다. 범위를 좁혀 읽는다.
- 속도인가 위치인가 — 큰 %는 기저 효과일 수 있다. 성장 기울기와 절대 지점을 분리한다.
이 세 축을 겹쳐 보면, “삼성의 절반”이라는 한 줄은 훨씬 조심스러운 여러 문장으로 풀린다. 그리고 그 조심스러움이야말로 추격자 뉴스를 정확히 읽는 방법이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CXMT·삼성·하이닉스 중 무엇이 유리하다는 방향성 판단도, 2027년 점유율이 얼마가 될 거라는 전망도 아니다. ‘점유율의 절반’이라는 흔한 문장이 어떤 서로 다른 자로 나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교육 자료일 뿐이다. 인용된 기관 추정치 역시 하나의 가정 위에 선 계산이라는 점을 함께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