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반도체 생산의 82%가 쏠려 있고, 호남 등에 새로운 클러스터를 만들려는 논의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여기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개념이 하나 있다. 지리적 집중 리스크(geographic concentration risk)다. 이 글은 ‘어느 지역이 유망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산이 한곳에 몰렸다는 사실을 재무·산업적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개념 해설이다.
집중은 왜 생기나 — 집적경제라는 인력(引力)
생산이 한 지역에 모이는 건 우연이 아니라 강한 경제적 인력이 작동한 결과다. 반도체처럼 협력사·장비·용수·전력·고급 인력이 촘촘히 얽힌 산업일수록 이 힘이 세다.
- 협력사 근접: 소재·부품·장비 업체가 가까우면 물류·대응 시간이 줄어든다.
- 인력 풀 공유: 같은 지역에 기업이 몰리면 숙련 인력이 그 지역에 모이고, 채용·이직 시장이 두터워진다.
- 인프라 규모의 경제: 대규모 전력·용수·도로를 한 지역에 깔면 단위당 비용이 내려간다.
이걸 경제학에서 집적경제(agglomeration economies)라 부른다. 82%라는 숫자는 이 인력이 수십 년 작동한 결과지, 누가 억지로 만든 게 아니다. 그래서 “몰려 있다 = 잘못됐다”로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그런데 왜 리스크인가 — ‘독립’이 ‘상관’으로 바뀔 때
집중의 대가는 위험의 성격이 변한다는 점이다. 핵심 개념은 상관(correlation)이다.
공장이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으면, A지역 정전과 B지역 태풍은 대체로 서로 독립적인 사건이다. 하나가 터져도 다른 하나는 멀쩡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여러 공장이 한 지역에 몰리면, 그 지역을 덮치는 공통 충격(common shock) 하나가 여러 공장을 동시에 때린다. 개별 위험이 ‘독립’에서 ‘상관’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역 단위 공통 충격의 예:
- 자연재해: 지진·홍수·태풍 같은 광역 사건.
- 인프라 병목: 지역 단위 전력·용수 공급 제약.
- 규제·행정: 지역 개발·환경 규제, 인허가 지연.
- 인력 경쟁: 같은 지역 기업끼리 인력을 놓고 벌이는 임금·이직 압력.
포트폴리오 이론의 언어를 빌리면, 분산투자의 이점이 ‘자산 간 낮은 상관’에서 나오듯, 생산 분산의 이점도 ‘지역 간 낮은 상관’에서 나온다. 82%가 시사하는 건 “안전하다/위험하다”가 아니라 “공통 충격이 오면 산업 생산의 큰 몫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는 노출 정도”다.
집중도를 ‘재는’ 관점 — 숫자를 판정이 아니라 지도로
집중을 다룰 때 흔한 오독은 하나의 퍼센트를 보고 곧장 좋고 나쁨을 매기는 것이다. 개념적으로는 두 축을 함께 봐야 한다.
- 집중도(얼마나 쏠렸나): 상위 1~2개 지역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82%는 이 축의 값이다.
- 충격의 상관(무엇에 함께 노출됐나): 그 지역이 공유하는 위험이 얼마나 서로 얽혀 있는가.
두 축을 곱해서 봐야 의미가 생긴다. 집중도가 높아도 그 지역이 특별히 재해·인프라 위험이 낮다면 노출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집중도가 중간이어도 모든 거점이 같은 전력망·같은 용수원에 매달려 있으면 실질 상관은 매우 높다.
그래서 프로는 ‘82%‘라는 헤드라인 숫자를 판정 도장으로 쓰지 않고, “이 산업이 어떤 종류의 위험에 얼마나 묶여 있는지 보여주는 지도”로 읽는다. 지도는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줄 뿐이다.
‘클러스터 분산’이 실제로 바꾸는 것
새 지역에 클러스터를 만드는 논의를 리스크 관점에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위험을 없애는 게 아니라, 위험의 상관구조를 재설계하는 작업이다.
- 줄어드는 것: 단일 지역 공통 충격에 산업 전체가 동시에 무너질 확률. 지역이 둘로 나뉘면, 둘 다 같은 날 재해를 맞을 확률은 하나가 맞을 확률보다 낮다. 전체 생산의 변동성이 완만해질 여지가 생긴다.
- 새로 생기는 것: 신규 부지 건설·인력 확보·협력사 이전이라는 시간·비용 리스크. 초기에는 집적경제 이점을 포기하는 대가도 치른다.
- 바뀌는 것: 위험이 ‘한 점에 집중된 큰 꼬리’에서 ‘여러 점에 분산된 완만한 분포’로 성격이 이동한다.
즉 분산은 공짜 점심이 아니다. 상관을 낮추는 대신 효율을 일부 내주는 맞교환이다. 어느 쪽이 ‘옳다’는 답은 산업 구조, 위험 성향, 시간 지평에 따라 달라진다. 개념이 하는 일은 그 맞교환의 항목을 빠짐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것까지다.
이 글은 특정 지역·기업·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82%나 집중도가 높거나 낮은 것이 안심 또는 위험의 신호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지리적 집중’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반복해서 등장할 때, 그것을 효율과 상관 리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