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4 수율 80% 돌파”라는 헤드라인은 숫자 하나로 감정을 만든다. 하지만 이 글은 그 숫자가 좋다/나쁘다를 판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재는 사람이지 점치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하려는 건 딱 하나다 — “수율 80%“를 원가와 공급량의 언어로 다시 읽는 것.
수율은 ‘품질’이 아니라 ‘개수’의 단위다
수율(yield)은 흔히 “잘 만드는 정도”로 오해된다. 정확히는 웨이퍼 한 장에서 정상 작동하는 칩(양품 다이)의 비율이다. 웨이퍼 한 장에 이론상 1,000개의 다이가 들어간다면, 수율 80%는 그중 800개가 팔 수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나머지 200개는 이미 재료·공정 비용을 다 쓴 채 버려진다.
핵심은 여기다. 버려진 200개의 비용은 살아남은 800개가 나눠 진다. 그래서 수율은 품질 지표이기 이전에 원가 배분 지표다. 개당 원가를 아주 거칠게 쓰면 이렇다.
개당 원가 ≈ (웨이퍼 한 장 비용) / (웨이퍼당 다이 수 × 수율)
수율이 분모에 곱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이 개념의 전부다. 수율 40%면 웨이퍼 비용을 400개가 나눠 지고, 80%면 800개가 나눠 진다. 같은 웨이퍼 값이라도 개당 부담은 절반이 된다.
왜 낮은 수율에서의 개선이 더 크게 먹히나 — 1/수율의 볼록성
여기가 비직관적인 지점이다. “5%p 올랐다”는 말은 어디서 올랐느냐에 따라 원가 효과가 전혀 다르다.
- 40% → 45%: 1/0.40 = 2.50 → 1/0.45 = 2.22, 감소폭 0.28
- 75% → 80%: 1/0.75 = 1.33 → 1/0.80 = 1.25, 감소폭 0.08
똑같은 5%p인데 낮은 구간에서의 절감이 3배 이상 크다. 이유는 개당 원가가 1/수율에 비례하고, 1/x 곡선은 x가 작을수록 가파르기 때문(볼록성)이다. 그래서 초기 램프에서의 수율 개선은 원가에 극적으로 반영되고, 성숙 구간의 개선은 체감이 줄어든다.
즉 “80% 돌파”라는 헤드라인의 무게는, 그 80이 어디서 올라온 80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20%에서 80%로 온 것과 70%에서 80%로 온 것은 원가 경로가 완전히 다르다. 헤드라인 숫자 하나로는 그 경로를 알 수 없다.
수율 램프는 ‘학습 곡선’이다 — 시간축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원가
수율은 양산 개시 순간 고정된 값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오르는 곡선이다. 이걸 학습곡선(learning curve)이라 부른다. 그래서 “양산 6개월 만에”라는 속도 표현이 따라붙는다 — 절대 수율과 램프 속도는 다른 축이다.
이 시간축을 감각으로 잡으려면, “빨리 오르는 경로”와 “천천히 오르는 경로”에서 누적 원가가 어떻게 벌어지는지를 봐야 한다. 아래 도구는 원래 변동성이 만드는 두 곡선의 이탈을 보여주는 시뮬레이터지만, 여기서는 “조건(변동성·기간)을 바꾸면 두 경로의 누적 결과가 갈라진다”는 성질 자체를 감각으로 잡는 용도로만 본다. 슬라이더를 직접 움직여, 조건 차이가 시간이 쌓일수록 얼마나 벌어지는지 그 벌어짐의 구조를 손으로 느껴보라.
(주의: 위 도구의 축 라벨은 수율 전용 용어가 아니다. 여기서 읽어야 할 건 숫자 자체가 아니라 “경로가 다르면 누적 결과가 벌어진다”는 일반 성질뿐이다.)
수율이 오르면 ‘더 좋은 칩’이 아니라 ‘더 많은 칩’이 나온다
가장 자주 새는 오해는 “수율이 오르면 성능 좋은 칩이 나온다”는 것이다. 아니다. 수율은 같은 캐파(웨이퍼 투입량)에서 팔 수 있는 개수를 늘린다.
이게 왜 중요한가. 팹 증설은 조 단위 자본과 수년의 시간이 든다. 그런데 수율을 40%에서 80%로 올리면, 웨이퍼 투입을 한 장도 안 늘리고 판매 가능 물량이 2배가 된다. 이걸 “숨은 증설”이라 부를 만하다. 그래서 수율은 공급 측면에서 캐파와 같은 층위의 변수다 — 공급량은 (캐파 × 수율)로 결정되지, 캐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특히 HBM처럼 여러 DRAM 다이를 수직으로 쌓고 로직과 붙이는 구조에서는, 각 단(段)의 수율이 곱해진다. 8단을 쌓으면 최종 수율은 단일 다이 수율보다 구조적으로 낮아지기 쉽고, 그래서 적층·본딩 수율의 개선은 개당 원가에 더 큰 지렛대로 작동한다. “돌파”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곱셈 구조에서는 한 단의 개선이 전체를 끌어올린다.
그래서 ‘80%‘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정리하면 “수율 80% 돌파”는 세 가지 정보를 동시에 담은 압축 표현이다.
- 원가: 개당 원가가 1/수율에 비례해 내려왔다(단, 어느 구간에서 올라온 80인지가 절감폭을 결정).
- 공급: 같은 캐파에서 팔 수 있는 개수가 늘었다 — 숨은 증설.
- 속도: “6개월 만에”는 학습곡선의 기울기이며, 절대 수율과는 다른 축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판가·물량·경쟁·수요를 말해주지 않는다. 수율은 손익 방정식의 분모 한 항일 뿐이다. 원가가 내려가도 판가가 더 빨리 내려가면 마진은 줄고, 물량이 받쳐주면 늘어난다. 그래서 수율 하나로 손익이나 주가 방향을 잇는 것은 여러 축을 하나로 뭉갠 착시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목표가도, 방향성 예측도 아니다. “수율 80%“라는 보도 수치를 원가와 공급량이라는 개념의 자로 다시 재는 법을 설명한 교육 자료일 뿐이다. 숫자가 크다/작다는 감정이 아니라, 그 숫자가 어느 축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 — 그게 이 글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