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점유율 격차 37%p→17%p.” 이 헤드라인은 한 문장 안에 강력한 서사를 담는다. 격차가 절반 이하로 줄었으니 추격이 무섭게 진행 중이라는 느낌. 그런데 여기서 잠깐 멈추면, 이 “격차”라는 단어가 실은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자로 잴 수 있는 값이라는 게 보인다.
격차에는 자가 두 개 있다
두 회사의 점유율이 A%와 B%라고 하자. “격차”를 재는 방법은 최소 두 가지다.
- 퍼센트포인트 격차(뺄셈): A − B. 전체 시장(100%)에서 몇 %만큼 더 차지하는가.
- 비율 격차(나눗셈): A ÷ B. 몇 배 큰가.
예를 들어 선두 60%, 추격자 23%라면 뺄셈으로는 37%p, 나눗셈으로는 약 2.6배다. 시간이 흘러 선두 55%, 추격자 38%가 되면 뺄셈으로는 17%p, 나눗셈으로는 약 1.4배다.
뺄셈 자로 보면 격차는 37에서 17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나눗셈 자로 보면 2.6배에서 1.4배로 줄었는데, 이건 “절반”이라기엔 애매하고 배율로는 여전히 상당한 차이가 남아 있다. 같은 숫자인데 두 자가 서로 다른 감정을 만든다.
왜 두 자가 갈리는가 — 선두의 크기가 열쇠
핵심은 분모다. 나눗셈 격차는 추격자의 점유율(분모)이 작을수록 폭발적으로 커진다. 추격자가 5%일 때 선두가 45%면 %p로는 40%p지만 배율로는 9배다. 추격자가 40%로 올라오면 같은 5%p를 좁혀도 배율은 훨씬 완만하게 움직인다.
즉 추격 초반에는 배율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p는 상대적으로 얌전하다. 추격 후반으로 갈수록 %p가 극적으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율은 이미 1점대로 내려와 변화가 둔해진다. 이 비대칭 때문에, 어느 국면에서 어느 자를 쓰느냐에 따라 “빠르게 좁혀진다”와 “생각보다 안 좁혀진다”가 둘 다 사실일 수 있다.
아래 위젯에서 선두와 추격자의 점유율을 직접 움직여 보라. 같은 %p 변화가 배율에서는 전혀 다른 폭으로 나타나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성 변화와 집계 변화는 산술적 관계입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는 이 그림이 말해주지 않습니다.
”절반으로 줄었다”는 검증 불가능한 문장
여기서 실전 독해법이 나온다. 어떤 기사가 “격차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쓰면, 그건 어느 자를 썼는지 밝히기 전까지는 참·거짓을 판정할 수 없는 문장이다.
- 뺄셈 기준으로 절반: 37%p → 18.5%p
- 나눗셈 기준으로 절반: 2.6배 → 1.3배
둘은 완전히 다른 상태를 가리킨다. 게다가 뺄셈으로 “절반”이 된 지점이 나눗셈으로는 “절반이 안 된” 경우가 흔하다(선두가 클 때). 그래서 격차 뉴스를 읽을 때 던질 첫 질문은 “몇 %p?”가 아니라 **“뺄셈인가 나눗셈인가”**다.
한 가지 더. %p 격차는 시장이 세 곳 이상으로 나뉠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세 번째 사업자가 점유율을 잃으면 남은 둘의 %p 격차는 저절로 벌어지거나 좁혀질 수 있다 — 두 회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이건 뺄셈 자가 가진 착시다.
격차를 읽는 세 번째 질문 — “무엇의 점유율인가”
자를 정했어도 남는 문제가 있다. 분모가 되는 시장의 정의다. HBM처럼 세대(예: HBM3, HBM3E, HBM4)가 빠르게 교체되는 시장에서는, 전체 HBM 매출 기준 점유율과 최신 세대 기준 점유율이 크게 다를 수 있다. 물량(비트) 기준과 매출 기준도 다르다. 고사양·고단가 제품 비중이 높으면 물량 점유율이 낮아도 매출 점유율은 높게 나온다.
그래서 “점유율 격차가 좁혀졌다”를 온전히 검증하려면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① 뺄셈인가 나눗셈인가, ② 물량 기준인가 매출 기준인가, ③ 전체 시장인가 특정 세대인가. 이 셋이 정해지지 않은 격차 숫자는, 방향은 맞을지 몰라도 크기는 신뢰하기 어렵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격차가 좁혀졌으니 역전이 임박했다거나, 어느 회사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담지도 않는다. 다만 “격차 몇 %p”라는 한 줄이 실제로는 여러 자로 잴 수 있는 값이며, 자를 밝히지 않으면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개념을 설명하는 교육 자료다. 같은 데이터를 두 자로 직접 재보는 것 — 그것이 격차 뉴스를 스스로 검산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