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 85%“는 집중을 개수로 세는 문장이다
AI 시대 가장 희소한 자산으로 불리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두고 “3개 기업이 공급의 85%를 쥐었다”는 헤드라인이 반복된다. 이 문장은 강력하지만, 집중도를 사업자 개수라는 대리지표로 요약한다는 함정이 있다.
문제는 “3”과 “85%“가 병목의 실제 크기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세 회사가 같은 85%를 나눠 갖더라도, 그 85%가 어떻게 쪼개져 있느냐에 따라 시장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 40 / 40 / 5 — 상위 두 곳이 팽팽히 경쟁. 구매자는 두 공급원을 저울질할 여지가 있다.
- 70 / 10 / 5 — 사실상 한 곳에 물량이 쏠림. 나머지는 보완재에 가깝다.
합계는 둘 다 85%. 사업자 수도 똑같이 3. 하지만 병목은 후자가 훨씬 조인다. 개수는 집중이 아니다. 개수는 집중을 짐작하게 하는 껍데기일 뿐이다.
쏠림을 하나의 숫자로: 왜 제곱하나
집중도를 정직하게 재려면 “몇 개”가 아니라 “얼마나 쏠렸나”를 숫자로 만들어야 한다. 산업조직론에서 오래 쓰는 도구가 HHI(허핀달-허시먼 지수) 다. 계산은 단순하다 — 각 사업자의 점유율(%)을 제곱해서 전부 더한다.
제곱이 이 지표의 전부다. 제곱은 큰 점유율을 더 크게, 작은 점유율을 더 작게 만든다. 그래서 한쪽으로의 쏠림이 자동으로 부풀려져 숫자에 드러난다.
- 40/40/5(나머지 15% 분산): 큰 두 개가 각각 1,600씩 → 쏠림이 두 곳에 분산돼 HHI는 비교적 낮게.
- 70/10/5: 70의 제곱만 4,900 → 한 숫자가 전체를 끌어올린다.
즉 동일한 개수·동일한 합계 점유율에서도 HHI는 분포를 구분한다. “3사가 85%“가 놓치는 것을 HHI는 잡는다. 이것이 개수 세기와 집중도 측정의 결정적 차이다.
부분을 바꾸면 집계가 끌려 움직인다
핵심은 “부분(각 사의 점유율) → 집계(집중도)“라는 구조다. 구성비를 바꾸면 합계 점유율은 그대로여도 집중을 나타내는 집계값이 달라진다. 직접 슬라이더를 움직여, 같은 합계에서 쏠림만 바꿨을 때 집계값이 어떻게 끌려가는지 만져 보라.
구성 변화와 집계 변화는 산술적 관계입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는 이 그림이 말해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얻는 직관은 하나다. 집계값 하나(“85%“)로는 원인(분포)을 구분할 수 없다. 부분의 모양을 알아야 병목의 성격이 보인다. 이는 지수 편입비중에서 종목 수가 같아도 상위 쏠림에 따라 실질 분산이 달라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
부족에서 진짜 권력은 ‘가격’이 아니라 ‘배분’
집중이 병목이 되는 두 번째 통로는 가격이 아니다. 물량이 모자랄 때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배분 재량이다 — 남는 물량을 누구에게 먼저, 어떤 사양(SKU)으로 줄지 정하는 힘.
부족장에서는 가격이 다 조정되기 전에 이미 “받는 자와 못 받는 자”가 갈린다. 이때 집중도가 높을수록, 배분을 결정하는 쪽의 상대적 힘이 커진다. 40/40 구조에서는 구매자가 두 공급원을 저울질하지만, 70에 쏠린 구조에서는 배분 순번 자체가 사업의 명운을 가른다.
그래서 “3사가 85%“라는 문장을 만나면 두 가지를 되물어야 한다.
- 그 85%가 어떻게 나뉘어 있나 (분포 = 집중도)
- 부족할 때 배분 재량이 어디에 쏠려 있나 (권력 = 순번 결정)
개수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답하지 못한다. 개수는 시작점일 뿐이다.
이 개념을 오래 쓰는 법
HBM은 오늘의 예시지만, “N개 기업이 M%“라는 문장 구조는 반도체 장비, 파운드리, 원자재, 플랫폼 어디서든 반복된다. 그때마다 개수와 합계 점유율에 놀라는 대신, 분포(집중도)와 배분 재량으로 번역하는 습관이 이 글의 핵심이다.
- 개수 ↓ = 집중 ↑ 이라는 등식은 근사일 뿐이다.
- 같은 개수·합계에서도 쏠림이 다르면 병목이 다르다.
- 부족장에서는 가격보다 배분 순번이 먼저 말한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기업의 점유율이 오를지 내릴지를 전망하는 글도 아니다. “3사가 85%” 같은 집중 표현을 개수가 아니라 집중도와 배분의 언어로 다시 읽는 방법을 다루는 교육 자료다. 실제 점유율 수치는 출처와 시점에 따라 다르므로, 여기서는 특정 값을 단정하지 않고 개념 구조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