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라는 숫자에는 분모가 세 개 있다
“HBM이 2027년 D램 생산능력의 30%를 차지한다” 같은 문장은 깔끔해 보인다. 하지만 ‘생산능력’이라는 말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분모가 숨어 있다.
- 웨이퍼 면적 기준: 공장 라인의 몇 %가 HBM용 웨이퍼를 돌리고 있나
- 비트 생산량 기준: 실제로 시장에 풀리는 메모리 용량(GB) 중 HBM이 몇 %인가
- 매출 기준: D램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몫은 몇 %인가
세 숫자는 같은 현실을 재지만, 거의 항상 다른 값이 나온다. 그리고 그 차이는 측정 오차가 아니라 HBM이라는 제품의 구조에서 나온다. 헤드라인이 “30%“라고만 쓰고 분모를 밝히지 않으면, 독자는 자기가 상상한 분모를 끼워 넣는다 — 대개는 가장 직관적인 ‘시장의 30%‘로.
HBM은 비트당 웨이퍼를 더 먹는다
핵심은 이것이다. 같은 1GB를 만드는 데 HBM은 일반 D램보다 웨이퍼를 더 쓴다.
이유는 세 겹이다. 첫째, HBM은 여러 장의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쌓고 베이스 다이와 TSV(관통 전극)를 더한다 — 구조 자체가 추가 면적을 요구한다. 둘째, 쌓고 붙이는 공정에서 수율 손실과 패키징 손실이 추가된다. 셋째, 스택 높이가 올라갈수록 다이 박막화·본딩 난도가 올라가 실효 투입 면적이 더 늘어난다.
그래서 HBM의 웨이퍼 점유율은 비트 점유율보다 항상 크게 보인다. 공장 라인의 30%를 HBM이 먹고 있어도, 거기서 나오는 비트(GB)는 전체 비트의 30%보다 작다. 비트당 면적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반대로 매출 점유율은 또 다르다. HBM은 비트당 단가가 일반 D램보다 훨씬 높아서, 비트 점유율이 낮아도 매출 점유율은 웨이퍼 점유율을 넘어설 수 있다. 결국 세 숫자는 대체로 매출 > 웨이퍼 > 비트 순으로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제품 믹스에 따라 달라진다).
구성비를 직접 움직여 보라 — HBM이 차지하는 웨이퍼 비중을 올리면, 비트 기준 집계값과 매출 기준 집계값이 어떻게 다르게 끌려가는지 아래에서 손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성 변화와 집계 변화는 산술적 관계입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는 이 그림이 말해주지 않습니다.
분모를 섞으면 생기는 착시
문제는 사람들이 헤드라인의 숫자를 다른 분모의 질문에 답하는 데 쓸 때 생긴다.
- “캐파의 30%를 먹으니 공급이 넉넉하겠네”라는 추론은 비트 질문인데, 근거로 쓴 30%가 웨이퍼 숫자라면 틀린다. 웨이퍼 30%가 비트로는 그보다 작으므로, 시장에 풀리는 용량은 생각보다 적다.
- “HBM이 매출의 30%밖에 안 되네”라는 안도는, 그 30%가 매출 기준이 아니라 웨이퍼 기준이라면 과소평가다. 매출 기준으로는 더 클 수 있다.
같은 사건, 같은 “30%“가 어느 분모에 얹히느냐에 따라 ‘많다’와 ‘적다’가 뒤바뀐다. 그래서 점유율 기사를 읽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숫자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이 30%의 분모가 뭐지?”**를 묻는 것이다. 분모가 적혀 있지 않으면, 그 숫자는 아직 비교 가능한 정보가 아니다.
웨이퍼 점유율이 끌고 가는 연쇄
이 구분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닌 이유는, 웨이퍼 점유율이야말로 물리적 제약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공장 라인의 면적은 유한하다. HBM이 웨이퍼의 30%를 가져가면, 나머지 70%에서만 일반 D램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HBM은 비트당 면적을 많이 먹으므로, 웨이퍼 점유율이 조금만 올라가도 일반 D램에 남는 비트 생산 여력은 더 크게 줄어든다. 이것이 ‘캐파 이전이 범용 D램 품귀를 만드는’ 메커니즘의 뼈대다(관련: 캐파 이전이 만드는 범용 D램 품귀).
즉 세 분모 중 웨이퍼 점유율이 원인에 가깝고, 비트·매출 점유율은 결과에 가깝다. 헤드라인이 결과값(매출)만 보여주면 원인(면적 압박)이 가려지고, 원인값(웨이퍼)만 보여주면 시장에 풀리는 실제 용량(비트)이 과대·과소 해석될 수 있다. 세 숫자를 나란히 놓아야 비로소 ‘공장에서 시장까지’ 이어지는 그림이 선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점유율 숫자가 ‘좋다/나쁘다’를 판정하지도 않는다. 헤드라인의 “캐파 30%” 같은 숫자를 읽을 때 그 분모가 무엇인지 스스로 구분하도록 돕는 개념 설명이며, 날짜가 지나도 유효한 교육 자료다. 실제 비율은 기업·시점·제품 믹스에 따라 달라지므로, 위젯의 기본값은 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일 뿐 특정 회사의 실측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