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도를 높인다’는 헤드라인이 숨기는 것
메모리 뉴스에서 “집적도를 높인다”는 문장은 거의 매번 나온다. 그런데 집적도(밀도)는 결과값이다. 같은 밀도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갈래이고, 그 갈래마다 비용 구조가 전혀 다르다. 헤드라인이 “EUV 없이 밀도를 높인다”고 말할 때, 독자가 진짜 읽어야 할 것은 “밀도를 올렸다”가 아니라 “어느 경로로 올렸고, 그 경로의 비용은 어떤 모양인가”다.
경로는 크게 셋이다.
- 해상도 경로(EUV): 빛의 파장을 짧게(13.5nm) 해서 한 번의 노광으로 더 작은 패턴을 찍는다. 미세화를 ‘광학’으로 푼다.
- 공정 단계 경로(다중패터닝): 긴 파장의 DUV로 같은 간격을 만들려면 한 층을 여러 번 나눠 찍는다. 미세화를 ‘단계 수’로 푼다.
- 수직 경로(3D 적층): 평면 밀도를 더 짜내는 대신 셀을 위로 쌓는다. 미세화를 ‘방향’으로 푼다.
세 경로는 경쟁이자 보완이다. 그래서 “EUV 없이”라는 표현은 기술적 불가능을 뒤집은 선언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는 공정 설계 진술이다.
EUV는 ‘단계를 압축’하고, 다중패터닝은 ‘단계를 늘린다’
핵심 대립은 여기 있다. 같은 선폭(피치)을 만든다고 할 때:
- DUV + 다중패터닝은 마스크 1장으로 안 되니 2장(더블), 4장(쿼드)으로 쪼갠다. 노광·식각·증착 단계가 그만큼 반복된다.
- EUV는 그 쪼개기를 한 번(또는 더 적은 횟수)의 노광으로 압축한다. 마스크 수와 공정 단계가 줄어든다.
그래서 EUV의 가치 명제는 “더 작게”보다 “더 단순하게”에 가깝다. 단계가 줄면 두 가지가 같이 줄어든다. 하나는 각 단계마다 쌓이는 결함 누적 확률, 다른 하나는 장비를 붙잡고 있는 사이클타임이다. 단계가 N개면 각 단계 수율 y일 때 전체 수율은 대략 y의 N제곱으로 깎인다 — 단계 수는 곱셈으로 수율을 잠식한다.
반대로 EUV는 장비 자체가 비싸고 가동(광원 유지, 스루풋)에 돈이 든다. 그래서 질문은 “EUV냐 아니냐”가 아니라 **“늘어난 단계의 비용이 EUV의 장비·가동 비용을 넘어서는 지점은 어디냐”**다. 이건 전형적인 한계 교차 문제다.
같은 밀도를 비EUV 단계로 쌓아 올릴 때, 단계 하나를 더 넣는 한계비용이 EUV로 가는 비용선을 넘어서는 지점이 교차점이다.
왜 ‘밀도당 비용’으로 봐야 하나
‘EUV 없이’라는 문구가 유독 비용 절약처럼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장비 투자 한 축만 세기 때문이다. EUV 스캐너는 수백억 단위로 비싸니 “그걸 안 쓰면 싸겠지”라는 직관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반도체 비용은 **bit당(또는 die당)**으로 재야 한다. 다중패터닝으로 단계를 2~4배 늘리면 재료비, 장비 점유 시간, 그리고 위에서 본 누적 수율 손실이 모두 bit당 비용에 더해진다. 그래서 다음 역설이 가능하다.
장비 투자는 아꼈는데, bit당 비용은 더 비싸진다.
반대 역설도 가능하다. EUV로 단계를 압축해 수율과 사이클타임이 좋아지면, 비싼 장비를 샀는데도 bit당 비용은 낮아진다. 어느 쪽이 참인지는 노드가 얼마나 미세한지, 그리고 그 노드에서 각 경로의 수율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에 달렸다. 노드가 느슨하면 다중패터닝이 유리하고, 미세해질수록 단계 수가 폭증해 교차점이 EUV 쪽으로 밀린다 — 이것이 업계에서 EUV 도입 ‘문턱 노드’가 논쟁거리인 이유다.
그래서 “EUV 없이 집적도를 높인다”를 읽을 때 체크할 것은 하나다. 그 밀도를 몇 단계로, 어떤 수율로 만들었는가. 단계와 수율을 빼고 밀도 숫자만 비교하면, 비용이 전혀 다른 두 물건을 같은 자로 잰 셈이 된다.
3D 적층이라는 세 번째 축 — 방향을 바꾸는 선택
다중패터닝과 EUV가 ‘평면에서 얼마나 미세하게’를 두고 다투는 축이라면, 3D 적층은 아예 축을 꺾는다. 평면 피치를 더 쥐어짜는 대신 셀을 수직으로 쌓아 단위 면적당 밀도를 올린다. NAND가 이미 간 길이고, DRAM도 수직화 논의가 활발한 이유다.
여기서 ‘집적도’라는 단어의 모호함이 다시 드러난다. 3D에서 밀도는 평면 미세화가 아니라 **층 수(stack height)**로 온다. 그래서 “EUV 없이 밀도를 높인다”가 사실은 “평면을 더 미세화하는 대신 위로 쌓는다”를 뜻할 수도 있다. 같은 헤드라인 아래 완전히 다른 공정 전략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세 경로가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수직으로 쌓으면서 각 층은 여전히 DUV 다중패터닝으로 찍을 수도, EUV로 찍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로드맵은 “EUV냐 적층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밀도 목표를 세 경로에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조합 문제에 가깝다.
정리 — 재는 자리는 밀도가 아니라 밀도당 비용
- 집적도는 결과값이다. EUV·다중패터닝·3D 적층은 거기 도달하는 다른 경로이고, 비용 구조가 서로 다르다.
- EUV는 단계를 압축(마스크·결함·사이클타임 ↓)하는 대신 장비·가동 비용을 올린다. 다중패터닝은 그 반대다.
- 어느 쪽이 싼지는 경로의 속성이 아니라 노드와 수율에 달린 상대값이다. 교차점은 노드가 미세해질수록 EUV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 그래서 “EUV 없이 밀도를 높인다”를 읽을 때 봐야 할 축은 ‘밀도 달성 여부’가 아니라 밀도당 비용·단계 수·누적 수율이다.
이 글은 특정 장비 업체나 메모리 기업의 주식·ETF를 사라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EUV 없이 집적도를 높인다’ 같은 헤드라인을 읽을 때, 밀도라는 결과값과 그 결과에 도달하는 경로의 비용 구조를 분리해서 보기 위한 개념 설명일 뿐이다. 특정 공정이 유리하다거나 그래서 어느 기업이 앞선다는 판단은 노드·수율·수요가 결정하는 것이며, 이 글은 그 판단의 틀만 제공한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된다.